고서현
고양외고 3학년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5월, 고양외국어고등학교(이하 고양외고) 곳곳에서 보이는 학생들의 창의적인 작품들이 주목받기 시작하며 고양외고만의 독특한 수행평가들이 새삼 관심을 받고 있다. 단순히 학생들 간의 점수를 가르려는 목적이 아닌, 마음으로 사회를 느끼게 하고 학생 스스로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게끔 함으로써 학생들을 진정한 글로벌 리더로 키우려는 선생님들의 노고가 모여 고안해낸 수행평가인 만큼 그 결실도 알차다.
현재 고양외고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2학년 문과 학생들의 사회문화 수행평가다. 정진희 교사(고양외고 2학년 사회문화 담당)가 작년부터 시작한 이 수행평가는 ‘시민단체 수행평가’로 불리는데, 학생 네 명이서 시민단체 하나를 만들어 ‘내가 남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나’를 고민하여 정해진 기간 안에 조금이라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사진을 찍거나 문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과제 수행이 인정된다. 이 수행평가는 2학년 문과 학생들만 하는 것이지만, 그 효과는 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학교 전체를 바꿔놓기에 이르러 교내에서 굉장한 호평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시민단체는 ‘미용실 갈 시간이 없어 미처 자르지 못한 앞머리를 잘라준다’는 광고문을 학교 여기저기에 붙여놓고, 점심시간에 지정된 장소로 온 학생들의 앞머리를 잘라주는 일을 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 호기심에 한 번 살짝 가볼 뿐이던 학생들 사이에서 ‘진짜 잘 잘라주더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학생들이 그 단체의 ‘무료 서비스’를 이용하고 만족스러워했다. 또, ‘대한 양호신 협회’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붙인 시민단체는 ‘당신의 실내화는 건강하십니까?’라는 문구와 함께 ‘밑창 등이 떨어진 실내화를 가져 오면 감쪽같이 고쳐주겠다’고 광고했다. 이 외에도 3학년 선배들에게 내신 관리‧학교생활 등에 관한 조언을 구해 큰 종이에 예쁘게 편집해 1, 2학년 게시판에 붙여 놓은 시민단체, 선생님들의 사진을 찍어 교무실 문마다 각 교무실에 계시는 선생님의 성함‧담당 과목과 함께 붙여 뵙고자 하는 선생님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한 단체, 급식실 문에 급식 아주머니들의 사진과 함께 ‘고양외고의 어머니들입니다. 급식을 받을 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인사합시다’라는 문구를 써 붙인 단체, 외부인이 학교를 방문했을 시 원하는 곳을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학교 전체의 약도를 그려 학교 정문에 배치해 놓은 단체 등,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독특한 아이디어와 자신만의 장점을 접목시켜 학교 곳곳을 변화시켰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결과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학생들에게 있어서 이 수행평가가 갖는 진정한 의미는 물리적인 측면을 훨씬 뛰어넘어, 학생 개개인이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몸소 깨닫게 해줬다는 데에 있다.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웃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웃음이 좋다는 멘트와 함께 복도 이곳저곳에 게시한 고양외고 2학년 최지웅 학생은, “학업에 지쳐 웃음을 잃은 학생들에게 웃음을 되찾아주고 싶어서 이 일을 선택했다”며 “공익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하고나서 친구들이 우리가 게시한 사진들을 보며 웃는 걸 보니 뿌듯했고 우리가 한 일에 대해 자랑스러웠다. 우리 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사회문화 수행평가를 계기로 공익을 위해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니 우리 덕에 학교가 한결 더 좋아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즉 ‘나 한 명이 잘한다고 해서 이 사회가 뭐 그리 크게 바뀌겠어?’라는 수동적이고 소시민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나도 사회를 더 좋게 만들 수 있어!’ 라는, 적극적이고 바람직한 리더의 자세를 함양하도록 도와주었다는 것이 바로 이 ‘시민단체 수행평가’가 가진 진짜 능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