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현
고양외국어고등학교 2학년___11/22/10 – 가을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10월과 11월, 고양외국어고등학교(이하 고양외고)의 2학년 문과생 319명은 난생 처음 보는 색다른 수업을 받았다. 수업의 주제는 일명 ‘사회적 기업 만들기 프로젝트’.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팀을 이루어 자신이 원하는 사회적 기업의 설립 기획을 직접 작성해 투자 설명회까지 성공적으로 끝마치라는 것이 학생들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지나친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많은 지적을 받곤 했던 한국 교육의 단점을 혁신적으로 뒤집어버린 수업이었다.
이 수업을 주도한 정찬형 선생님(고양외고 2학년 경제 담당)은 학생들에게 사회적 기업의 개념을 알려주기 위해 여름 방학 동안 읽어야 할 책 한 권을 지정해주는 것으로 수업의 도입부를 열었다. 방학 과제를 마친 학생들이 알게 된 사회적 기업은, 간단히 말해 ‘설립의 1차 목적을 사적 이윤 추구가 아닌 사회적 효용 증대에 둔 기업’이었다. 첫 과제를 통해 사회적 기업이 일반 기업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학생들은, 정 선생님으로부터 “다음 과제는 너희가 직접 사회적 기업을 세워보는 것이다”라는 지시를 듣고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정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본격적인 과제 설명을 해주고 나서 제일 많이 들은 질문이 ‘선생님, 저희 이거 진짜로 해요?’였다”며 웃었다.
그가 사회적 기업 창립을 경제 수업에 도입하게 된 계기는 바로 ‘답답함’ 때문이었다고 한다. 입시 위주의 교육과정 속에서 자신이 선생님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되어 있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던 그는, “‘대체 나는 뭘 할 수 있지?’라는 의문을 갖게 되면서 도전정신이 생겨 이 수업을 시작했다”며 “학교는 우리 사회에 맞는 인재를 키우는 곳인데, 사회는 계속 변화하는 반면 대부분의 학교는 변화에 둔감하죠. ‘답답하다고만 하지 말고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부터 변화시켜보자’는 취지에서 나온 생각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자신의 수업으로 사회에 아주 조그만 변화라도 주고자 한 그의 열정은 참으로 대단했지만, 열정만 갖고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그는 노력 또한 무섭게 했다. 8월부터 ‘소풍’이라는 사회적 기업 월례 모임에 다달이 참석 했으며, 진로 교육 세미나에 참석해 실제 사회적 기업가를 소개 받고, 사회적 기업 창업을 주제로 수업을 하는 대학 교수들을 알아내 일일이 메일을 보내 수업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KAIST 이주성 교수와의 만남을 위해 인천에서 대전으로 직접 내려가기까지 했다. 몇 달 전에는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시키기 위해 사회적 기업가 염지홍 씨를 초빙해 2학년 문과 학생들 전체가 그의 경험담을 들도록 주선하였는데, 학생들은 대체로 염지홍 씨와의 만남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사회적 기업에 더 큰 흥미와 관심을 보임으로써 정 선생님에게 보람을 안겨주었다.
선생님의 강제적인 팀 구성 없이 자발적으로 모여 한 팀을 이룬 학생들끼리 팀장이나 서기, 카페지기 등을 뽑은 후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이나, 팀별로 창업 회의를 한 후 함께 머리를 맞대고 투자 설명회를 위한 프리젠테이션 준비 등을 하는 모습 등은 정 선생님의 피로가 어느덧 미소로 바뀌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수업을 진행해 나갈수록 교실에서 다른 기류가 느껴진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생소한 수업에 다소 쭈뼛거리던 학생들이 어느새 자신들이 만들어낸 창업 계획서를 보며 스스로 뿌듯해하고 “선생님 이거 진짜 대박이에요. 저희 프로젝트 진짜 장난 아니에요.”라며 자랑도 할 정도로 자신감을 갖는 모습 등에 그는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작은 삶의 공간을 구상하고 그 구상대로 무언가 변화를 이루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 그 상상하는 얼굴을 보면 기쁘다”고 말한다.
어느덧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한지 2달이 흘러 그의 프로젝트 수업도 이제 대단원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학생들은 각자의 과제를 멋지게 해결하여 어엿한 CEO들 못지않은 진지함으로 투자 설명회에 참석했고, 모든 기업의 운영 계획 설명을 들은 후 각자에게 주어진 모형 지분을 이용해 자신이 유망하다고 생각하는 기업에 투자함으로써 프로젝트를 마감했다. 몇 달씩이나 걸쳐 준비하고 실시한 ‘진짜’ 학생 중심의 수업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정 선생님은 말한다.
“Do something! 실패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부딪혀보자. 위대한 평민이 되어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자!”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한 인재는 그의 말처럼 ‘위대한 평민’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학생들이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인재가 되도록 인도하기 위해 수고를 무릅쓰고 교육의 혁신을 단행한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